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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기술

리튬-황 배터리에서 다황화리튬 셔틀 효과 억제를 위한 격리막 개발

황의 배신: 꿈의 소재가 문제의 근원이 된 아이러니

황은 완벽한 배터리 소재처럼 보였다. 지구상에서 16번째로 풍부한 원소로 석유 정제의 부산물로 나오니 사실상 공짜다(톤당 100달러). 이론 용량은 1672mAh/g로 리튬이온 배터리 양극재의 5배 수준이다. 게다가 무독성에 환경친화적이다. 2009년경부터 리튬-황(Li-S) 배터리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다.

 

하지만 황은 곧 연구자들을 절망시켰다. 방전 과정에서 황(S₈)이 순차적으로 환원되면서 Li₂S₈, Li₂S₆, Li₂S₄, Li₂S₂, Li₂S 등 다양한 다황화리튬(lithium polysulfide, LiPS)을 만든다. 문제는 이 중간 생성물들이 에테르 전해액에 잘 녹는다는 점이다. 마치 설탕이 물에 녹듯이 말이다.

 

녹아 나온 다황화리튬은 분리막을 통과해서 음극 쪽으로 확산한다. 여기서 리튬과 만나 다시 황 쪽으로 돌아간다. 이를 "셔틀 효과(shuttle effect)"라고 부르는데, 마치 셔틀콕이 양쪽을 오가는 것처럼 다황화리튬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활성 황이 계속 손실되고, 쿨롱 효율은 70-80%로 떨어진다. 몇 번 충방전하면 용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2012년 스탠포드 대학의 Yi Cui 교수가 "Li-S 배터리의 숨겨진 적"이라고 표현했을 때, 전 세계 연구자들이 공감했다. 황이라는 완벽한 소재를 망치는 건 바로 황 자신이었다. 이 아이러니를 해결하지 못하면 Li-S 배터리는 영원히 실험실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방어선: 탄소 감옥에 황을 가두다

초기 해결책은 단순했다. 황을 물리적으로 가둬서 녹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2009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연구진은 "황-탄소 복합체" 개념을 제시했다. 다공성 탄소 입자 안에 황을 넣고 입구를 막아서 황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탄소의 기공 크기가 2-50nm인데, 다황화리튬 분자는 1-3nm에 불과했다. 마치 농구공 크기의 문으로 탁구공을 막으려는 격이었다. 기공을 더 작게 만들면 황을 넣기도 어려워지고, 이온 전달도 막혔다. 물리적 구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2014년 중국과학원 연구진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탄소나노튜브(CNT) 내부에 황을 넣고, 양 끝을 작은 분자로 막는 "분자 마개(molecular cork)" 개념이었다. 페로센(ferrocene) 분자가 CNT 입구에 딱 맞게 끼워져서 황은 들어있지만 다황화리튬은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100사이클 후에도 90% 용량을 유지했지만, 제조 공정이 너무 복잡했다.

 

더 현실적인 접근은 "화학적 결합"이었다. 황을 탄소와 공유결합으로 연결해서 아예 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황-탄소 결합(C-S)은 결합 에너지가 272kJ/mol로 상당히 강하다. 하지만 이렇게 결합된 황은 전기화학적 활성도 떨어져서 용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안정성을 얻는 대신 성능을 포기해야 했다.

 

진짜 돌파구는 "그래핀 샌드위치" 구조에서 나왔다. 2016년 MIT 연구진은 황을 두 장의 그래핀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래핀의 π-π 스택킹으로 강하게 결합된 구조에서 황은 안정적으로 고정되고, 동시에 우수한 전기전도도도 확보됐다. 하지만 그래핀의 높은 비용이 문제였다.

 

리튬-황 배터리에서 다황화리튬 셔틀 효과 억제를 위한 격리막 개발

 

스마트한 격리막의 등장: 선택적 투과의 마법

탄소 호스트의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연구자들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양극에서 황을 완전히 가두는 대신, 분리막에서 다황화리튬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리튬이온은 통과시키되 다황화리튬은 막는 "스마트 격리막" 개념이었다.

 

2015년 스탠포드 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다층 격리막"이 첫 성공 사례였다. 기존 폴리프로필렌 분리막 위에 탄소나노튜브 층을 코팅한 것이다. CNT의 좁은 간극(1-2nm)이 다황화리튬(3-5nm)의 통과를 물리적으로 막았다. 동시에 CNT의 전기전도성이 황 쪽 전극의 집전을 도와서 성능도 향상됐다.

 

하지만 물리적 차단만으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황화리튬이 서서히 스며들었고, CNT 층도 점점 막혔다. 더 정교한 "화학적 선택성"이 필요했다.

 

2017년 칭화대학 연구진은 "친황성 격리막" 개념을 제시했다. Ti₄O₇ 나노입자를 분리막에 코팅한 것이다. 티타늄은 황과 강한 친화도를 가져서(Ti-S 결합) 다황화리튬을 흡착한다. 흡착된 다황화리튬은 Ti₄O₇ 표면에서 고체 Li₂S로 직접 변환되어 더 이상 확산하지 않는다. 마치 자석이 쇠가루를 붙잡는 것처럼.

 

더 정교한 설계는 "계층적 구조"였다. 2019년 중국과학기술대학에서는 3층 구조의 기능성 격리막을 개발했다. 첫 번째 층은 거친 다황화리튬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두 번째 층은 화학 흡착으로 미세 분자들을 포집하며, 세 번째 층은 리튬이온의 균일한 전달을 담당한다. 각 층이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 시너지를 낸다.

 

극성의 마법: 분자 간 상호작용으로 차단하다

물리적/화학적 차단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연구자들은 더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다황화리튬과 분리막 사이의 분자 간 상호작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황화리튬은 극성 분자라서 같은 극성을 가진 표면에 강하게 흡착된다.

 

2020년 서울대 연구진이 개발한 "극성 코팅" 격리막이 대표적이다. 폴리도파민(polydopamine) 층을 분리막 표면에 코팅했다. 도파민의 아민(-NH₂)과 페놀(-OH) 그룹이 다황화리튬의 황 원자와 수소결합을 형성한다. 이 수소결합은 30-40kJ/mol의 적당한 강도를 가져서 다황화리튬을 일시적으로 붙잡지만, 리튬이온은 쉽게 통과시킨다.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전기적 극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2021년 KAIST 연구진은 분리막에 양전하를 띠는 코팅을 입혔다. 다황화리튬 음이온(S_n^{2-})이 정전기적 인력으로 코팅층에 흡착되지만, 리튬 양이온(Li⁺)은 정전기적 반발로 빠르게 통과한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명확한 선택성을 보였다.

 

가장 정교한 설계는 "분자 인식" 격리막이다. 크라운 에테르나 사이클렌 같은 고리형 분자를 이용해서 특정 크기의 이온만 선택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18-crown-6는 Li⁺와 완벽하게 맞는 공동 크기(2.6-3.2Å)를 가져서 리튬이온만 통과시키고 더 큰 다황화리튬은 차단한다. 하지만 크라운 에테르의 높은 비용이 상용화의 걸림돌이다.

 

자가치유하는 스마트 격리막: 차세대 기술의 전망

최신 연구는 "적응형 격리막" 개발로 향하고 있다. 배터리 운전 조건에 따라 성질이 바뀌는 스마트한 격리막이다. 2023년 도쿄대학 연구진은 온도 응답성 격리막을 개발했다. 상온에서는 다황화리튬을 강하게 흡착하지만, 60°C 이상에서는 흡착력이 약해져서 막힌 기공이 다시 열린다.

 

더 혁신적인 개념은 "자가치유 격리막"이다. 사용 중에 손상되거나 막힌 부분을 스스로 복구하는 기능을 가진다. 폴리우레탄에 가역적 결합(디술파이드, 수소결합)을 도입해서 물리적 손상 시 자동으로 결합이 재형성되도록 설계한다. 마치 상처가 저절로 아무는 것처럼.

 

2025년 현재, 격리막 기술은 실용화 단계에 근접해 있다. 중국 CATL은 자체 개발한 기능성 격리막을 적용한 Li-S 배터리 시제품을 발표했고, 일본 도레이는 대량생산용 코팅 공정을 개발 중이다. 성능 목표는 500사이클에서 용량 유지율 80% 이상이다.

 

하지만 여전한 과제들이 있다. 기능성 격리막은 두께가 두꺼워져서(50-100μm) 에너지밀도가 감소한다. 또한 코팅 공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비용이 일반 분리막의 3-5배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진정한 상용화가 가능하다.

 

Li-S 배터리의 미래는 격리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황화리튬이라는 "숨겨진 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궁극의 격리막을 개발하는 날, 리튬이온 배터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에너지 시대가 열릴 것이다. 황의 배신을 축복으로 바꾸는 마법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